개인 적인 것들/글 들..ㅠ.ㅠ

성심동창회보 2018 숙제

흰머리사자 2018. 10. 30. 15:33

 

 

내가 사랑했던 성심     - 배석준

 

퇴직한지 이제 5

가르치는 일 대신에 손녀를 가까이 하는 일 빼놓고는 늘 변함없이 그대로 지낸다.

(숙제)을 쓰기 전 먼저 몇 년 전 모친상을 당했을 때 동창회에서 조기를 보내주셔서 친구들이 집사람이 성심여고 졸업했냐는 질문에 웃고 말았다.

이제 여기 지면을 통해 감사드린다.

 

올 봄 기념관을 옮긴다고 학교와 동창회에서 도움을 청해 정리하면서도 퇴직교사나 현직교사나 아무도 나서지 않음에 혼자 또 해치웠다.

1981년 성심국제학교가 폐교되던 해 바자회를 통해 판 국제학교 교과서, 교구 등도 이제껏 집에 보관하고 있다가 이번 기회에 기증해 버렸다. 앨범, 사진 몇장 외에는 국제학교 흔적이 아무 것도 없음 이 아쉬워서였다.

허긴 교사로 학교 그것도 여고 동창회 일에 한 발을 쉽게 들여 놓을 수 있는 건 내가 모교 중앙학교를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나 역시 늘 그 곳에서 동창회 활동을 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알기 때문이다.

 

<숙제> 성심교육이념이 언제부터인가 바뀐 듯 한데, 구체적으로 어떤 면이 두드러지게 달라졌는지, 그게 좋은 점도 있고 좋지 않은 점도 있음에 대해서 예화를 곁들에 써주신다면 좋겠습니다.

 

성심교육이념은 예수 성심을 닮은 성심인, 이웃의 필요에 응답하는 현명한 인간을 키움에 있는데, 외향적으론 굳이 바뀌었다면 목표가 신앙, 사회정의, 공동체, 학문 교육 4가지에서 인격형성 교육.이 추가되어 5가지로 늘었고 학문교육이 앞에 배열된 정도이다.

 

사회 정의교육이 기본생활의식과 책임감 형성, 환경에 대한 바른 인식과 보존에서 시대의 흐름인지 행동을 촉구하는 사회의식으로 조금 강화된 정도라 할까. 예전 신학년 세미나 때마다 공동체와 사회정의를 나누는 것이 어려워 한때는 묶어서 다룬 적도 있던 것도 기억난다.

 

허긴 어느 학교의 교육이념이나 교육목표가 나쁜 것이 있으랴 만은..

 

접근하긴 어려워도 결국은 실천에 옮기는 교사, 빋아 들이는 학생과 학부모, 그리고 이끄는 교장수녀님들의 생각 차이가 아닐까 싶다.

 

성심학교는 뭘 바꾸기를 좋아한다.

바꾸고 바꾸고 또 바꾼다.

 

교훈도 교가도, 교복도...

교훈도 진실, 충성, 인내에서 진실, 정의, 사랑으로 바꾸었고

교가 후렴부의 충성을 드러내리를 새 교훈을 넣어 ’1절 진실을, 2절 정의를, 3절 사랑을 드어내리로 바꾸었다. 난 늘 충성을 드러내리로 부르지만.

 

중앙학교의 교훈은 '웅원(雄遠용견(勇堅성신(誠信)'이다.

뜻은 교가 3절에 나온다. 높거라 너의 이상, 굳거라 의지, 맘과 몸은 온전히

1908년 설립 110여년이 지났지만 그대로 쓴다.

다만 시대적 흐름에 따라 해석의 차이는 있겠지만 그것이 뭐 그리 중요한가.

4절까지 있는데 가사는 최남선 선생님의 글이다.

교가에 있는 흰뫼와 한가람(높은 산과 큰 강)‘ 옛 고어도 그대로 사용한다.

동창들 보면 각종 모임에서 기본 2절까지는 지금도 외워 부른다.

 

이제는 뭐가 성심인지 모르겠다.

어쩌면 모르겠다는 사람들은 시간이 흘러 어릴 때의 그 넓던 학교운동장이 지금 보면 어처구니없이 작아 보이듯, 예전 내가 성심동산에 머무르고 있을 때의 모습이 아닌 걸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이 아닌가 싶기도 하고.

 

들고 다니던 자주색가방에서 어깨에 메는 쌕으로 바뀌던 초기 였던 때 등굣길 언덕에서 이구상샘의 명언이 생각난다. ‘~ 니들 학교에 오는 거니, 등산 오는 거니?‘

 

시대는 거스르지 못하는 것임을 우리는 늘 뒤 늦게 깨닭는다.

-6,70년대 성심학교 상징이던 자주색 모자가 두발자율화로 커트머리가 유행하면서 걸 곳이 없어 사라질 수 밖에 없음을..

-자주색-예수님의 피의 상징이라고 알고 있던 그 자주색 교복이 고교 선발지원제 때의 학생들이 지원을 기피하는 첫 번째 악재였다 것을..

-치마 길이도 교문이 나서기기 바쁘게 두 세단은 접어 입은 걸 김혜란샘도 어쩌면 알고 계셨고 학교 안이니까 그러셨는지도 모른다.

-머리 묶는 곱창밴드가 유행할 때 겨울 쎄미나에서 생활지도 문제로 열띤 토론 끝에 아주 크지 않은 것은 허락하기로 어렵게 결론 내렸지만 그 다음해부터는 학생들은 아무도 그것을 하지 않았다. 유행이 지났기 때문에

 

 

 

난 속으로 그런다.

그저 그나마 학교가 다른 곳으로 이전하여 학교이름 이외는 모든 것이 새로워져 낯선 학교가 아니라, 그나마 모교라고 찾아오면 오래된 동산이 성당이 반겨주는 걸로 감사하고 만족해야 하는 거 아닌가 하고

 

 

 

..퇴직교사를 기억해 줌에 감사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