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효로성당 외전..ㅋㅋ/성당지기 이야기..

성당지기의 이야기-02

흰머리사자 2012. 10. 2. 14:56

지을 때부터

김대건신부님(AK)의 유해

를 모실 성당

사진1)성당에 모셔진 김대건 신부님 유해는

              두개골을 안장한 금색의 유해함

 

사진2) 위 사진의 위치를 가르키시는 모습

 

사진3) 발굴 공사중 나타나는 틀..^^

 

사진4) 2011년 성당공사 후 복원해 놓은 모습

 제대 왼편에도 같은 모양의 대를 복원  

 

사진5) 김대건 신부님의 유해함의 또 다른 사진.

 

 - 사진1,5,6)는 가톨릭신학대학 사진첩에서 스켄


 김대건 신부님 유해는  엉뚱하게도 성당 안 제대의 아래쪽에 있던 것이 아니고

제대 쪽을 바라보고  오른쪽 벽면을 파서 만든 함같은 곳이 있어  9일기도때는  꺼내서 기도를 하고 다시 넣어두고 했다고 하신다. 
   

  그럼.. 이곳에 계셨다는 유해는 뭐냐고 다시 여쭈었더니..

  이미 두개골을 안장한 금색의 유해함이었더고 하시는 걸 보면..   유해가

  바닥 대리석 밑에 있던 시점은 성당이 지어진 1902년을 뜻하는 것같고.. 

 

  또.. 성당을 지을때 입구(성수물이 있는곳) 들어가며 오른쪽 구석 마루 바닥에..

 흰대리석에 AK를 세겨 그 곳 아래에  유해가 모셔져 있었다고..하셨다.
 시점(時点)은 조금 이상해도.. 초기에 그유해의 두개골 부분만 

 이곳 원효로성당(예수성심성당)에 모셨고..   유해의  나머지 부분은..

 교황청을 비롯한 모든 성지..수도원 등 으로 보내 졌다 하셨다. 

 

 

나중에 확인된 또 하나의 기록

 

 사진6)  말씀처럼 AK와 1821~1846 가 적혀있는 흰 대리석 뚜껑

 

 

 

 바닥 공사중일때 혹시해서 위치를 확인했더니..

 

 오른편 위에서 찍은 사진처럼..

 직사각형 모양의 구명(함)이 있고..

 

그 안의 벽돌이 건물 외벽과 같은 걸로 보아  아예 이 성당을 만들때

김대건 신부님 유해를 이곳에 모실려 작정하고 만든 것같다..

                                                풍월만 늘은 야사 학자..^^ 

 

  이 페이지를 만드는데.. 꼬막 한나절.. 이렇게 만들 계획은 아니였는데..ㅠ.ㅠ


 

 김대건 신부님 유해함..

2009년 9월 성당 바닥공사 당시 들어 낸.. 김대건 신부님 유해함..  // <성당지기 이야기> 2편 참조

 

성당 난방  다트공사로 헐어..  벽돌만.. 옆에 쌓아놓았다는 이야길 현장 분들에게 들었는데.. (2012년 09월)우리는 문화재마저.. 눈에 보이는 외형만 중시.. ㅠ.ㅠ .. 또 100년이 지나야.. 내부에도 충실... 그저.. 과정이거니 하고.. 나서면..뾰죽한 돌이 정을 맞는다.----  말을 삭히며..ㅠ.ㅠ

 

 <추가> *** 1층 들어오는 입구 성수대와 내부사이에 3개의 아치가 없었다.

 

 예전의 성당은 1층 들어오는 입구 성수대와 내부사이에 3개의 아치가 없이..

오른편 그림처럼 벽으로 막히고 가운데,, 문이 있었나 보다.

 그래서 사람들이.. 위 시진5)의 오른쪽 흰 벽면이 지금은 없어.. 흰 대리석의

위치를 칮기가 어려웠나 보다.

 

<덧 붙이는 외전>

  

삼위일체 스테인그라스

( 내가 구별하려 붙인 이름)가 있는 성당사진을  바올로회 수녀님들로부터 받았는데..   

그  바오로수녀원이 예전 -밖에서 학교 교문 바라보고 왼편에 있었고.  오른편에는 성모병원 분원이 있었다는 설.

외전의 근거

   나의 외숙모님의 외삼촌을 뵈었을 때 성심학교에 근무한다니까.. 

 본인이 625전에 그 곳 병원에  잠시 계셨다며  당시 김구선생님이 잠시 그 병원에 계셨다는 이야기를 하시며..

 2층 그 병실에는 학생이던 본인과 수녀님 한분만 출입이 가능했고...
 김구선생님이 늘 볼때 마다하시는 말씀이 학생은 공부를 해두어야지.. 안하면 후회한다는 말씀을 직접 들었다고

 한 기억이..  오른쪽이 병원터를 설명을 들으며 떠올랐다.

 

<유령의 집> 터
  그분은 그곳을 목수깐이라고 부르셨다..

  그 당시에는 목수일을 할수 있는 창고였다고.. 

  우리는 가족의 날마다 그 창고(- 청소도구 보관용)를

  유령의집으로 개조해서..그렇게 불렀다.


                     - 없으니,.. 이젠  눈에 보이지 않으니 호칭할 일도 없다..ㅠ.ㅠ

 

 

성당 안의 제대 왼편 김대건 신부님초상화는

장발님( 장면박사의 형?)의 작품이라는 설..

  또 누구는 .. 예전 학교 미술선생님.. 본인이 그렸다는 이야기를 직접 들었다하니..

    / 언제 그림의.. 사인을 확인해 봐야겠다.

    -- 우선 잊어버릴까봐 기록을 정리. / 6월 23일


 

 

 

 

 

 

 

 

 

 

 

 

 

 

 

 

 

 

 

 

 

 

 김항식 안드리아 님이 불러주신 성가

 

 말가리다 마리아 알라콕 수녀와 예수 성심님 동상은  다시 성당.. 성물 칸에  수록하자
 용산신학교의 주보성인 예수성심과 기도하는 말가리다 마리아 알라콕 수녀 상은 두군데 있다.  

 

불러주신 노래의 악보 ..^^

-* 클릭하면 커다란 사진으로....... 

기념관 옆 뜰에 이것도 역사가 1900년 이렇게 올라가야 하나부다.

-이젠 지붕이라도 만들어 보관 하자는 데.. 
 아직도 회의중이란다.

추가> 퇴직후 어느날 보니 엉뚱한 곳으로 옮겨 놓았다

 성당안 제대 아래 동판으로 붙어 있는 예수성심성당을 나타내는..

- 말가리다 수녀와 예수 성심님 동상은 따로 한페이지를 만들어도  부족함..  

 

  단상 몇 가지.. 

1) 운동장은 지금보다 훌씬 작은 밭터 였고.. 옆에 장덕호, 덕필 형제신부님 댁이었다고

   성심수녀회가 오고, 학교를 세우며... 병원자리를 헐고 운동장으로 넓힌 듯..

 

2) 아- 그 분은 예수성심축일을 맞이해 예전 신학생시절.. 그림 속의 글에 있는 것처럼..

    신학생시절.. 예수성심대축일에.. 성당에 촛불 켜던 생각이 나서 모처럼.. 들러보신거란다..
   온김에.. 관구장수녀님을 뵈러갔다가 출타 중이셔서..

   옆방의 어떤 수녀님께.. 책<신학교이야기들>을 한권 얻어 내려가던 중이라며..

   // 그 만화책도 원본을 스켄떠서 올려야겠다..부분스켄은 수녀님이 저작자에게 허락 받아 주셨는데..

 

<뱀발> 기념관 아래 카페에서 수련님(18회)이 그 분이 식사를 안하셔서  맛난 샌드위치와 .. 냉커피를 주셨다. 
          나중에 들리는 이야기로는  할아버님과  내가 너무 신나하며  이야기를..나누었단다..^^

 

/ 5교시 수업만 없었으면... 조금 더 성당 안에서 예전 성당에 대해서도 설명을 더 듣는 건데..

조개껍질모양의 성수대는  예전 그대로네 하시다가.. 좀 바뀌었나..하셨는데.. 더 이상 이야길 잇지 못했다..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