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효로성당 외전..ㅋㅋ/성당지기 이야기..

성당지기의 이야기-01

흰머리사자 2012. 10. 2. 00:49

 

 

 

예수성심 대축일에 만난  김항식 안드리아 님께 들은  성당지기의 이야기

 

 

   2009년 6월 19일    예수성심 대축일에 만난  김항식 안드리아님은

  1950년  625전쟁이 일어났을 당시 19살   용산신학교 4학년 학생이셨단다. 

    - 625전쟁이 발발하고.피난 안가고..  성당지기를 하다.

  928 수복 전에는  인민군이 청년들은 징용으로 끌고 가기때문에..

성당 앞 예전 본관건물 마루바닥을 뜯고 굴을 파서 그 안에 3개월을 계셨단다.

덕에 폐결핵을 앓으셔서..  진주.. 부산으로 신학교가 옮겨가고 

전쟁후 ..집으로 돌아가 치료받는 바람에.. 신학교를 마칠 수 없었단다.

 

 .. 성심학교 이전의 궁굼한것들을 해결해 주실 것같아..

욕심내어 기념관 지하 카페에 모시고 갔다.  가다가 카메라가 필요할 것 같아..

잠시 교무실에 들러 필기류..
그리고 선물해드릴 상본(50주년)을 찾아.. 나오니.. 

성당앞.. 예수성심상 터를 보시며..

예전에 이곳이 신학교.. 우물터였다고 알려주신다.

몇 개는 손에드신 책 <신학교 이야기들>의 그림과 엮어 이해를 돕는다..ㅠ.ㅠ ..

 ..노가다..  각 그림은 클릭하면 조금 큰 사진이 나온다..

ㅋㅋ 

 

     김항식님..^^  이 할아버지는 70대 후반이시다.


   점심 먹고 산책중.. 할아버지를 한 분 뵈었는데..  

   손에..  <신학교 이야기들>을 들고 계셨다.  <-오른쪽 그림
   어이가 없어.. 어케.. 그 책을.. 하고 묻자..    

   용산신학교에 대해 잘 알지..  625사변 때 성당지기였는데.. 하신다.  

 

    <성당 지기...>  

 

   난 625 쯤에.. 없어졌다고 생각하는

   성당의 안 벽면의 14처와.. 성당 내부 기둥에 있던 성물..

   작은 동산의 성모동굴(마사비엘 굴)..
   사라진 삼위일체로 보이는 스테인그라스... 

   지을때부터 김대건신부님(AK)의 유해를 모실 성당이었다는 설 등 ..

 

   궁굼한것들을 해결해줄 구세주를 만난 기분이었다.

 

 

 

 

 

 

 

 

 

 

 

 

 

 

 

 

 

 

 

 

 

 

 


1)  < 성당의 안 벽면의 14처

   .. 안타갑게도.. 피난내려가기 전(50년 10월)까지는

  그냥 그 곳에 있었단다.

  / 전쟁끝나고.. 서울로 오지 않아 모르신단다.
     - 그러면서 김대건 신부님 유해가 혜화동 신학교로

  옮겨진 걸보면.. 그때 신부님들이 아실지도..  

  

   언젠가.. 서울교구나 신학교에  문의 해보아야겠다.

 

 

   성심 50년 동안 무관심이 아쉽다.

  - 허긴 없는 상태에서 성심학교가 시작되었테니까....
      

 

 

 
 2)  < 성모동굴(마사비엘 굴).. 에 얽힌 이야기
  >

     625가 터지고  이재현 교장신부님, 백남창, 조인환신부님,

  수녀 2분 인가 남고... 모두 피난을 갔는데..
  

   성당 안에 있던 김대건 신부님 유해가 혹 손상될지 몰라..

  그 성모동굴 앞의 화단의 땅을 파고 그 안에 드럼통을 묻고

  신부님이 옷으로 채우고 안에 김대건 신부님유해를 모시고

  다시 덮으시며..   교장신부님이.. 

  김대건 신부님은 두번 땅에 묻히셨다고 했다며..

  그래서 그 곳은 한국 가톨릭 성지와같은 곳이였는데..하며

  혀를 차셨다...ㅠ.ㅠ

 

 

   ...없어진것은 1992년인가..

  지금의 커다란 새 본관건물이 들어서고 난 후  어느날..

  (김재숙 수녀님이 교장으로 계실 때.. ) 
   포크레인 차가 들어왔다..

   때 마침이 수업이 없어서 그 현장에  나갈 수 있었다.

    그 날도수녀님께 왜 없애시려하시냐구.. 
    동창들의 추억도 얽혀있고..  (나도 그때만 해도.. 가치를  

   크게 느끼지 않고 단순했다) 중지 할 수 없냐고 했을 때 
   수녀님 말씀이 언제가는 없앨꺼고.. 

   앞에 뜰이 시원하게  보이지 않겠냐고 하셔..

   또 이미 결정이 났다고 하셨다.ㅠ.ㅠ

 

3)  < 성당 내부 기둥에 있던 성물.. >- 아랫그림 참조 
 오른쪽이 성녀 잔다르크 ( 프랑스  聖人)

 왼편이 돈보스코 성인 이였단다.
      - 이것 역시 14처와 마찬가지...ㅠ.ㅠ

 

< 사라진 삼위일체로 보이는 스테인그라스. >- 옆 그림 참조   
 예전 스테인그라스의 파손.. - 50년 10월 전 :

  세개의 스테인 그라스   중앙이 예수님.. 양쪽이 베드로와 바오로..

 누가  어느쪽인지는 기억이 안난다 하셨다.

 교장신부님은 625전쟁이 난  이후에도 매일 미사를 드렸는데.. 

 파손은 전쟁 중이니 포탄이  소리가 종종 났었는데..
  어느날  성체봉양하는 중..

 가까이 포탄 떨어지는 굉음과 진동이 있으면서..
  스테인그라스가.. 흘러내리듯 무너져 내렸단다.

 

   - 이후  한 동안은 하얀 그냥 네모모양의 바둑판식 창)

   이사진은 김정미수녀님게 부탁해 놓았는데...

 

 

성바오로수녀원에 보관되었던.. 성당내부 사진

 

  성심 40년사의 자료사진   / 출처미상 / 2층에서 찍음 

 

위 두 사진은 조심해 살펴야 한다.

추론 1) 왼편 사진은 반사때문인지 대충 그 시기면 있어야하는 삼위일체 스테인그라스가 안 보이고 오히려 격자창의 모양이다.

           또  벽면에 세워진 작은 성물 잔다르크 상과  돈보스코 상의 위치가 바뀌었다..^^

추론2) 625이후 스테인그라스가 깨진 다음의 복구상태일 때(시기미상)  사진.

또하나.. 제대 양쪽 출입문 위에 김대건 신부님 초상과 박해받는 그림의 걸린 각도가 다르고 지금 벽면에 붙은 상태와 다르다.

 

4) 사진에 성당옆에 우물터가 보인다.

 

 

 만나 뵌 날 내가 교무실에 카메라와 필기류를 가지러 들어갔다 나오니..

 예수성심상 앞에서 기다리시며.. 이곳에 예전엔 우물이 있었는데.. 하셨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