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군데.. 중복으로 대문처럼 올려놓는 사진..^^
<용산신학교> 라 함은 초기 성심학교 교사(구구본관)으로 쓰던 1892년에 완성한 성당 앞면의 용산신학교 건물을 뜻한다.
그리고 10년 뒤 1902년..김대건 신부님을 위한 원효로성당이 지어졌고.. 9년 뒤 1911년에 대신학생들을 위한 용산신학교 부건물(기념관)이..
3년 뒤 1914년에.. 교사와 기숙사를 위한 건물이 지어졌다..^^
1) 소피아홀
소피아홀 - 1974.8.1기공 1975.5.25 준공
// 성당 창문이 목조이다. 90년쯤 1차 문화재보전공사때.. 알루미늄 샤시로 바뀌었다... 어느게 문화제 보존인지..^^
기림비. 소피아홀 머릿돌
-- 참 이건 참고로 벽면에서 떨어져 바닥에 뒹구는 것을 한 10년 전 사진 찍어 놓고 체육실 책장에 넣어두었는데.. 잘있나..ㅋㅋ
<뱀발> 2012년 10월 말쯤 김정미수녀님과 찾으러 갔다.. 없다.. / 체육샘 이야기론 기림비를 내가 기념관에 가져갔단다..
언젠가는 기념관으로 가야한다는 말은 맞는 말이지만.. 죽은 물건만 기념관에 가져가는 것이 나의 작은 원칙이니까.. 가져갔을리가 없다.
아직은 소피아홀이 그곳에 늙었지만 살아있고 이 팻말이 달려있는 곳이 비어 있으니까../..
그래도 기념관 자료실을 찾아보아야하는데.. 내가 나의 기억을 믿을 수 없음에 슬퍼하며..ㅠ.ㅠ
기념관 옆방 자료실에서 쫓겨나고는 그 방을 들여다 보지도 않는다.. 나는 기념관관장이 아니라고 했다.
작은 상처라도 치유되는데는 오랜시간을 요하기도 함.. 사랑만큼 커다란 깊이를 지니니까.. 이젠.. 의미도 없다..
<추가- 2012.11.06>
세상에.. 내가 찾아내고도 내가 놀란... 분명 뒤배경이 본관.. 소피아홀 컷팅식.. / 물론 날자의 기록은 없다.
혹자는 다른 축제의 커팅식이 아닐까.. 나도 의심한 걸 할지도 모른다.
치만.. 김재순수녀님이 가운데 계시고.. 소피아홀 준공식이 75년 5월 25일이고 그해 9월엔 한순희 수녀님이 교장으로 오셨으니까..
/ 거기에 왼편 나무잎이 아직 봄이고.. 이렇게 정리해 나가는 거..^^
어딘가에는 존재한다.. 그들 옛분들도 기록이란 단어를 알기 때문에... 후세가 알아보지 못하는 거..^^
신기할 정도로 예전의 소피아홀 정면 사진이 없다..ㅠ.ㅠ 성심학교에서 제일 먼저피는 꽃이 소피아홀 앞 산수유 이다. |
2009년 3월 9일 . 안전과 지체부자유아도 배려한.. 비탈길을 만들었다. |
2) 뒤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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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센.. / 성심수녀회 기록 발췌
성녀 필리핀 뒤센을 기리는 건물 성심수녀회의 소피수녀님 담으로 성인 반열에 오르신 분-
1769년 8월 29일에 프랑스 그르노블에서 태어나 1804년에 성심수녀회의 창립자 젊은 마들렌 소피리 바라 수녀와의 만남을 계기로 하여 필리핀은 성심회 수녀가 되었다. 1818년, 미국의 루이지애나의 뒤브르 주교가 성심회 수녀의 파견을 요청함에 따라 필리핀의 꿈은 이루어지게 되었다. ... 작은 성당에서 늘 오랫동안 기도하곤 하던 필리핀 뒤셴 수녀를인디언들은 ’늘 기도하는 여인’이라고 불렀다.
1852년 11월 18일 미국의 세인트 찰스(Saint Charles)에서 하느님의 품으로 돌아갔다.
1940년에 시복 되었고, 1988년 7월 3일에 시성되었다.
뒤센관 1989.5.25 준공 / 기공식 날자 확인요?? ///기억을 되살리기 위한 기록- 89년에 앞마당 잔디가 까렸으면.. 이미 포크댄스는 없어짐??
행정실장 조규웅샘(아~반가운 알굴)이 사회를 본다. 신부님의 축성
2008년 3월 25일 뒤센관 -오른편 입구의 앞 쪽 기둥..(윗 사진참조) 안전문제로 없앰//ㅋㅋ
- 가운데 원형 창문(당시 학교교실 같지 않은 분위기)이 예뻐.. 모 드라마(제목과 예쁜 여배우 이름도 확인하자..) 촬영장소로도 쓰이기도..
3) 백합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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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합관 1992.11. 기공 1993. 6. 준공 - 아 블로그에 이런 편집기능이 있네... 꾸밈은 시간 잡아먹는 귀신
최금자 교장수녀님 / 학생은 백합관 휘호와 머릿돌 글씨를 쓴 이아무개- 문승주샘은 이름을 알고있었는데..확인해야지
2013.02.07 - 아침 확인 김중호 당시 교감샘이 기억 양진영학생 글씨는 한글 고어체란다.
백합관1층은 합동교실(120명쯤 들어가는 소강당: 지금은 멀티실처럼 사용)
백합괸 2층은 전산실 용도로 만들었으나.. 인터넷(만들 당시는 전화모뎀)의 발달로 서버실 확보 랜망 설치 문제로 도서관동으로 이전..
후 수녀원에서 사용하다가 요즘은 모름 - 나의 관심 밖 영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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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가> 나중에 발견된.. 그날의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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