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효로성당-성지순례용/성당 내부..^^

성당 전면-02 (제대 양 측면)

흰머리사자 2012. 11. 18. 22:31

 

성인 김대건 신부님 과   우리나라 최연소 소년 성인- 류대철 베드로

 

제대 옆면 김대건 신부님 초상화 윗편으로  반대 쪽 스테인드 글라스를 통해 들어오는 빛이 어울린다. 

 

**-*-**-  2012년 11월 22일 -김정미수녀님..과 확인과정 중  재정리 

아래 팜프렛에 적힌  두 그림이 장발님 작품이라는 글은 오류..

최초의 초상화( 지금 걸려있는 초상화 말고)가 장발님 작품.. 류대철 베드로 그림은  작가 미상..현재로는.. 

 

 장발 [張勃, 1901.4.3~2001.4.8] 서양화가. 초기에는 천주교회를 위한 성화작업을 많이 했고 조선미술전람회 반대활동을 했다. 교육에 힘썼으며 만년에는 미국에서 살며 동양적 비구상화 계열의 작품을 남겼다.   작품으로는 <목자 김대건>,<명동성당14제자 그림>,<사도상> ,< 김대건 신부상> 등 주로 성화를 많이 제작했었다.

 

예전 초상화 윗 편의 원형의 모습이 원형이다 . 격자창 있을 당시?.

... 스테인드 글라스를 바꾸고 나서

 김대건 신부님 초상화에 비친 스테인드글라스 잔영

 

상딩 제대를 바라보고 왼편문 위에 작은 원형 스테인드글라스가 있는데..가을에는 그 궤적이.. 김대건 신부님 초상화의 머리부분을 지난다.

 

우연히 아침미사에서 한 7~8년 전 9월에 잡았는데.. 이후로 노력핶으나..

계속 날이 흐려 잔영이 없거나.. 흐리거나.. 또 공사로 액자를  들어내고..

결국 원하는 걸 못 찍었다..ㅠ.ㅠ

 3월에 맑은 날 찍은..

 봄에는 궤적이 아래쪽으로 흘러 원하는 모양이 안나온다..

 

스테인드글라스의 잔영을 잡기 힘들다..

 

이 그림의 그린이는 장발(장면 박사의 친동생)님 이라는 것이 정설인 것같다.. /// 그린 시기는 다음에.. 확인하여 쓰자.. 도움요??.

 / 회색처리한 윗 글은 생각의 유추과정.. 확인된 증거 - 누구의 그런 것같더라가 아닌 경우 남겨놓는 것

아래 써있는 글의 번역도 필요..ㅋㅋ 왼편은 돌아가신 해 1846년 / 로마에서 시성식.. 1925년 

 

참슈치명-참수치명 (斬首致命)

 사형수의 머리와 양팔을 묶어 형장으로 데리고가 옷 을 벗기고 나무토막 위에 머리를 바치고 목을 베는 형벌

 

**-*-**-  2012년 11월 22일 -김정미수녀님..과 확인과정 중  재정리

- 원효로 성당  팜플렛의 내용 중  오류가 있었음. 김대건 신부님과 오른쪽의 류대철 베드로의 그림설명

 

 왼쪽 김대건 신부님과 오른쪽의 류대철 베드로의 그림은 한 때 벽면에서 내려져 보관되었었는데..

 초대교장 주매분 수녀님이 창고에서 찾아내어 걸려했더니..  장발님이 그린 김대건 신부님 초상화는 너무 상해.. 당시 미술선생님이던 박석환선생님에게 복사본을 부탁해 그려진 .. 지금은 모조품이 걸려 있는 것. 

 1960년 근처??    원본의 행방은 묘현..

 

-또하나의 증언

 1925년에 바티칸에서 열린 시복식에 한국순교자  5분의 그림이 있었는데  그 중  김대건 신부님 초상화는

당시 신학교 교장신부님이 들고 가셨다가  류대철 베드로 그림과 함께 2개만 가져오셨다는 설..

/ 류대철베드로 그림은 들고 간 기록이 없음.. 또한 당시 시복을 받으신 5분도 확인 요망??

 

 

 

-- 2014.05.22 정리-   아직도 정리 확인 중

(김항식님과 경향잡지참고)

 1925년에 바티칸에서 열린 시복식에 한국순교자 김대건신부, 류대철 베드로, 김효임 골롬바, 김효주 아네스, 세 프랑스 신부 5분의 그림을 놓고 시복식을 하였고 그 중  김대건 신부님 초상화는 당시 신학교 교장신부님이 로마로 들고 가셨다가  류대철 베드로 그림과 함께 2개를 가져오셨다는 설..

 

또 하나의 의문..

생각을 유추해보면 걸려 있는 김대건신부이 교장신부님이 로마에 가져갔다 가져왔다는 설에는 다소 문제가 생긴다.

오른 편 아래 <1925년 로마에서 시복식>이라고 쓰인 것을 보면  시복식전에 썼다는 이야기가 됨..???  

아니면 갔다외서 후에 추가기록을 한 것인지??

그것도 아니면 다른 김대건신부 초상화를 가져갔다가 가져와 시복 기념으로 장발님이 새로 그렸는지??

----  재확인 요망..^^

 

-경향잡지 2006년 9월호 (1662호)에 실린

김대건도를 제외한 류대철베드로와 나머지 3그림은은  이탈리아 화가 주스타니안 작품 

 

류대철 베드로 그림은 장발님 작품이 아니고,

서양선교사가 로마에서 그렸다는 설과  중국에서 그려졌다는 설 

중국에서 그려졌다는 설에 가까운  근거로는 뒷배경이 중국 풍이고 눈이 찢어져 있는 등등.. 

 

 

 

 

 

 

류대철 베드로 성인  

예전  사진과 요즘 사진

 

 

우리나라 최연소 소년 성인-유대철 베드로 | 신앙의 못자리

                                                             아우구스딩 2011.02.07 16:21  http://blog.daum.net/leesanggin/4015972 에서 퍼옴 

 

    책 원문 그대로 옮겨보았습니다.

          - 하늘로 가는 나그네 ( 김길수 저)         // 퍼온 곳에도 이런 글이 써 있습니다..^^

 

 유대철 베드로 성인  

 

유진길 아우구스티노 성인과

유대철 베드로 성인 부자

고문당하는 유진길 아우구스티노

 

 고문당하는 유대철 베드로 성인

  유진길은 역관의 집에서 태어나 열심히 공부해서 1만권의 책이 움직인다는 별명을 가질만큼 대단한 사람인데, 불교공부하다가 천주교 신자가 됐지요.

 궤짝에 붙은 '천주실의'가 적힌 종이를 뜯어내어 공부를 했어요

 역관이지요, 1만 권의 책을 읽은 지식인이지요, 게다가 유진길은 모든 사람의

심금을 울리는 명연설가이기도 합니다. 유진길의 설명을 듣고 가슴이 뜨거워지지 않는 사람이 없었다고 했습니다. 

 무엇을 물어도 다 명쾌하게 대답을 해 주어서 많은  사람들이 유진길의 얘기를 듣고 회두했다고 합니다.

 그런 그는 정하상과 함께 사제 영입운동에도 헌신적인 노력을 합니다

 

 이렇게 훌륭한 유진길인데 아이러니하게도 막상 회두시켜야 할 자기 아내는 회두는 못시킵니다.

아내가 끝내 영세하지 않았고 더불어 딸도 꼼짝을 안합니다.

 유진길의 아내는 그 시대 중인계급의 여인답지 않게 지식인이었고 훌륭한 가정주부였습니다. 

 

자기가 신자가 안되는 까닭을 논리정연하게 설명합니다.

 " 당신이 백번 말해도 당신말은 틀렸소, 당신 언변으로 다른 사람은 속여도 나는 못속이오.  분명한 것은 당신이 믿는 그 믿음 때문에 죽어간 사람이 몇 명이오. 당신도 결국에는 죽소.  당신이 죽으면 패가망신이요, 패가 망신하면 자손이 없어지고 집안이 멸문당하는데 내가 유씨집안에 시집와서 유씨집안을 지키지 못하면 도리를 다하지 못하는 것 아니오. 그러니 그 믿음을 버리고 유씨 집안을 일으키시오."

 

다 사실이고 맞는 말이죠. 하지만 유진길이 그 말을 들을 턱이 있습니까? 그러니까 유진길의 아내는 자녀들 만이라도 철저히 교육시킵니다.

 

" 절대로 너희 아버지 따라가지 마라. 죽는다." 이렇게 말이죠.

딸은 엄마 말을 딱 듣습니다. 아들은 아무말이 없었는데, 아버지 말을 따르고 있었던 거에요  엄마와 누나는 몹시 가슴아프면서도 사랑을 듬뿍 받아야 할 이 어린 소년을 밤마다 괴롭힙니다.

상당히 논리적으로 설득하죠. 아이의 손을 딱 잡고 타이릅니다.

 

 " 엄마의 눈을 똑바로 봐라. 엄마 말을 듣느냐, 안듣느냐. 아버지가 믿고 있는 천주학을 믿다가 누구도 죽었고, 누구도 죽었고, 누구도 죽었다. 지금도 아버지가 천주학을 믿는다는 사실이  밝혀지만 잡혀간다. 잡혀가면 죽는다. 너도 잡혀가면 죽는다. 너마저 죽으면 후손이 있느냐?  없느냐. 사서삼경을 읽어봐라. 자손을

번창하게 하는 것이 가문의 할일 인데 네가 그럴수 있느냐?"

 

이때 열 세살밖에 안된 그 어린 소년이 어머니의 그와 같은 논리정연하고 설득력있는 말에 긴 애기하지 않고 딱 한마디로 답합니다.

 

 " 어머니 말씀 다 맞고 어머니 말씀을 들어야 한다는 것도 알겠습니다.

그러나 순서가 있습니다. 아버지 말씀보다는 할아버지 말씀을 먼저들어야 하고 할아버지 말씀 보다는 하느님말씀 부터 먼저 들어야 합니다."

 

어머니가 할말이 없지요. 어머니는 아들을 개심시키려고 일부러 더 미워하고 어리광도 받아주지 않습니다.

 그러던중 아버지가 잡혀가자 이 열세살 소년은 " 나도 천주교 신자요." 하고

신앙고백을 하고 자수합니다.

이분이 바로 유대철 베드로인데 옥에서 심문을 받으며 엄포와 고문등 무자비한 혹형을 당합니다. 첫번째 매를 맞고 상처투성이로 옥에 들어왔을때 옥중 교우들이 어린게 이 고통을 어찌 겪어 내겠나 걱정하자

 " 너무 염려 마세요. 이쯤으로는 죽지 않습니다." 라고 말합니다.

함께 갇혀있던 사람들이 앞으로 더 당할 형벌을 염려할 때 유대철은

 " 저도 잘 압니다. 제가 맞은 매가 한 되의 쌀 중에서 몇 톨밖에 안되는 것인줄 압니다." 하고 오히려 안심시키죠.

 

  어린 소년이 모진 매에도 전혀 굽히지 않자, 화가 난 형리가 벌겋게 달군 숯덩이를 들고 위협하며 " 이래도 천주교를 버리지 않겠느냐?"  하고 묻습니다. 오히려 두려움 없이 입을 크게 벌리고 다가가는 기상에 교우들이 감탄하고 형리도 놀라 뒷걸음을 칩니다.

  뼈가 부러지고 살이 헤어져  온몸이 성한 데라곤 없었지만 늘 기쁜 얼굴이었다는 어린 유대철이 갖은 혹형에도 죽지 않자, 여론이 나빠질 것을 두려워한 관아에서 1839년 10월 31일 옥안으로 들어가 그 가련한 소년의 목을 졸라 죽입니다.

 

 이렇게 하여 유대철 베드로는 우리나라 최연소 성인이 되고

주일학교 주보성인이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