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심학교 자료들/사라진 추억들..^^

포크댄스 유래

흰머리사자 2012. 10. 19. 20:46

 --이글은 <성심의 쉼터>라는 동문 까페에 실었던 글을 원문 그대로 옮겨옴..  원래가 내 글..^^

 

포크댄스 - 언제 시작하였으며..어떤 과정이 있었는지 파헤쳐봅시다

 

원래 성심은 흐른다는 야사 형식으로 연재 계획이었으나,
부득이한 사정(게으름)에 의해 자료정리겸 조금 더 시간을 두고 이곳에 옮겨 연재할 계획. 

읽으신 분은

새소식을 <예: 70년도에는 누가 가장 인기교사(아- 포크댄스파트너로..)였나두 찾아봅시다..ㅎㅎ>

리플로 달아주시면 아마 홍두목님이  모으고 꿰맞추어  자료정리해 주실겁니다..(오리발.^^;)

포크댄스곡명도 몇 개 더 모았고 방송실 어딘가에 릴테이프로 보관되어 있을꺼라던데..

 

우선 시작하는 일탄으로 -작년 성심다움까페에 연재하려던 것을 재수록하기로..

---*-*-*-*-*-*-*-*-****-*--*-*-*-**-**--*-*-*-*-*-*-*-*-*-*-*-*-***--**-*-*-*-*-

 

 2000년 4월23일(일) 수정 - <뱀의 발>을 수록.

** 91년에는 분명 포크댄스는 있었다.
** 92년에두 있었다고 한다.
** 93년에는 있었던 것 같기두 하구..

□ 포크댄스의 유래
* 말 그대로의 외국 민속무용은 아니지만, 변형된 집단댄스.
* 성심학교에서 포크댄스하면 김혜란(무용)선생님을 빼놓을 수 없음.
- 어째든 늦어두 4월 중간고사는 포크댄스로 시험을 치루었으니까 전학생의 포크댄스화
(- 방석, 앞치마, 체육복, 실내화, 구두에 이름 안 쓰면 평소점수에서 감점 포함하여)
* 선우원나선생님(일명:선우아줌니)도 학창시절에 추었다니까-역사는??
* 70년대 초반은 잘 모르고 중반에는 멋있는 김수환(역사)선생님, 79년에서 80년대 초에는
노창일 선생님이 같이 추고 싶은 교사 1위를 약4-5년 유지.. :)
늘 학생현관쪽에서 지켜보셨던 심상범선생님이 갑자기-
* 가장 화려한 춤솜씨를 보여준 선생님은 역시 정종진(음악)선생님 - 1학년을 위한 조언:
성심정원을 만드신 -가끔 화단을 가꾸시는 성뼉영(성백영)선생님보다 훨씬 마른 분으로
작년에 정년퇴직하셨음. -정말 성심인은 특별히 감사해야 한다.
* 선우선생님도 졸업생답게 전곡을 무리없이 소화해냈고, 날씬한 몸매(50Kg두 안되는)와
유연한 솜씨 발휘하여, 언제나 3일전에 예약을 해야 함께 출수 있었음(-노처녀였음. ^^;)
* 아- 노선생님은 1주일전 예약이 마감되었고,
예약한 날 비가 오면 일부 아이들이
소피아홀에서라도 추여야 한다구 우겼었음. ㅎㅎ


□ 포크댄스장(場)
지금의 본관현관앞 자갈(잔돌)밭과 잔디밭. (- 예전엔 이곳이 구본관의 교무실앞 이었음.)
그래서 교무실로 선생님을 댄스파트너로 모시러 오는 것이 자연스러웠고, 교무실창문으로
내다보는 선생님들의 눈길에 관심이 많았음.

□ 포크댄스곡명
휘파람불며(?), 도레미송, 베사메뮤쵸, xxx스퀘어댄스, ... 7-8곡
- 곡명을 아시는 분 알려주시면 감사 ^^ !!

□ 언제/ 어떻게
점심시간에 -그래서 성심학교는 수업시간은 45분 단축수업해두, 점심시간은 50분을
확보한다는 썰이 있었음.
일주일에 2-3일 3-4곡씩 돌아가면서, - 휘나레곡으로 휘바람을 불며,
도레미송 등을 일렬로 쭉 서서 손을 흔들며 들어오는 모습이 눈에 선함.

□ 그럼 어떤 모습이었나-??
-- 이걸 말루 설명하려는 내가 기이(괴이)하구 자랑스럽다.. (정미래선생님 - 필기)

1. 둘이 손잡구, 팔은 쫙 피고
힐(뒤꿈치), 토(발끝), 힐, 토, 갤러핑(발을 부딪치며 옆으로 이동), 갤러핑, 갤러핑..
옆으로 돌고 손벽,
서로 팔짱끼고 제자리에서 한바퀴.
* 이해가 안가면 눈을 감고 그냥 외워라-.
* 원래 대단한 어린이들은 세상일이 전부 이해되는 것은 아니란다.

2. 둘이 손잡구, 앞뒤로 이동하며, 손을 굴린다.
스텝, 스텝, 홉(한쪽 다리들구 제자리에서 살짝 뛰는 동작)
옆으로 한바퀴 돌며 손벽 2회
도시도(각자 팔짱끼고 어깨스치며 마주돌기)후, 파트너 체인지 ??

3. 둘이 손잡구(오픈 포지션)
2명씩 4쌍이 서로 마주보고 2쌍이 손을 뻗어 지붕을 만들면(남대문놀이식)
나머지 두쌍이 먼저 안으로 들어가구 -...

// 항복 // - 베끼는 것에두 무리가 따름.

□ 포크댄스의 절정
아버지의 날 : 아빠와 함께 춤을 - 대개의 아빠가 감격과 함께 용돈인상
가족의날 : 남학생과 가장무도회에 손잡고 추는 기회(- 그당시는 획기적인 일)

(야사학자註 90년초반까지는 3년 주기로 아버지의날, 어머니의 날, 가족의날을 운영.)

□ 없어지게 된 배경.
내적 - 90년대 일어난 에어로빅댄스(살빼기에 혈안)가 학교에도 상륙.
포크댄스곡 2곡, 에어로빅 2곡 하면서
일부 허리굵은 학생과 교사의 포크댄스곡 후 에어로빅에서는 슬그머니 빠짐.
이제사 이야기지만 발을 올리며 허리를 굽혀, 팔꿈치와 무릎이 부딪치는 것이
얼마나 고통이였는지 - 되는 사람은 고통을 모름.
외적 - 때마침 뒤센관(음악실, 무용실-얼마전 종교실, 미술실- 졸업생은 지하식당자리)을
짓는다구, 앞마당(느티나무아래)에 공사물 쌓아 놓아 댄스장이 없어짐.
그리구는 잔디밭이 생겨남.(- 잔디밭에 들어가지맙시다.)
그래서 잠시 아래 운동장으로 댄스장을 옮겼는데,
성심은 재빠르며(-매점갈 때) 더러는 게으름.
교사도 귀찮아 정선생님 외에는 내려가 댄스하는 교사가 없었음.

야사학자 생각-
각종 신축공사 (얼마나 공사가 많았는지, 학생회학생들이 성심제 못하게 하려구
일부러 공사를 늦장 부린다는 얘기가 있었을 정도)로 앞마당 댄스장의 파괴와
아래운동장까지 이동의 번잡스럼, 교무실 창문의 선생님들 시선의 사라짐,
에어로빅의 침입, 이런 것들이 뭉쳐 자연스레 사라졌음.

** 부활하자!! 포크댄스.
전교사와 학생의 포크댄스 생활화


야사중 야일비담. *- 진한 男女有別 - 김혜란선생님과 정종진선생님편
예전에 겨울방학 크리스마스전 수녀님들이 손수 음식을 장만, 선생님들께 감사를
표하는 식사초대가 있었는데, 어느 해 그장소에서 여흥에서 정선생님이 김선생님께
감히 댄스를 청하셨는데, - 10여년간 포크댄스의 1등공신이란 협박에
어렵게 응하신 김혜란선생님의 손 위에는 손수건이 놓여 있었다는 사실.
- 이 야사학자를 용서하소서.

43330417HOURS
- JOON1004 

<뱀의 발>
-92년 한상국선생님(올 10년근속)이 온지 얼마 안되었을 땐데  방송반을 맡아 점심시간에 음악을 틀었던 기억이 있다 함.
- 80년대에는 노창일 선생님이 방송을 맡았었구, 그 다음 이창호선생님이 맡으며, 오늘날과같은 방송반의 시작이었고, 방송제를 할수 있는, 또 제작해 외부에서 상도 타고, 어째든 믹서를 사용하는 방송반이 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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