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심학교 자료들/옛 자료들-학교주변

함석헌님

흰머리사자 2012. 9. 30. 23:13

 

 

함석헌님의 부언설명을 조금 넣자.

 

 

함석헌(咸錫憲)

 1901년 3월 13일 평북 용천 ~ 1989년 2월 4일

 

 대한민국의 독립운동가, 종교인, 언론인, 출판인이며 기독교운동가, 시민사회운동가였다. 광복 이후에는 비폭력 인권 운동을 전개한 민권운동가이자 언론인, 재야운동가, 문필가이다. 그의 종교는 초기에는 무교회주의, 중기에는 퀘이커였으나 후기에는 특정 종교에 속하지 않게 된다.

 

반독재 민주화 운동

 

이승만 정권 즉, 자유당 독재정권 시절부터 반독재 야당 운동에 참여하여 3선 개헌에 반대하였으며 이후 10월 유신 이후 민주화 운동에 앞장서서 수차례 투옥되었다. 1969년 4월 19일에는 4.19 10주년 기념 강연을 마친 뒤 침묵 시위에 들어가기도 했다.

 

1970년에는 진보적 평론지 《씨알의 소리》를 창간하였으나 정권의 탄압을 받기도 했다.

10·26 사건 이후 통일주체국민회의에서 대통령 간선제를 고수하자 윤보선 등과 함께 대통령 직선제를 요구하기도 했다. 11월 24일 YWCA 위장 결혼식에 참석하였다가 사건에 연루되어 윤보선과 함께 재판정에 섰다. 1980년 1월 YWCA 위장 결혼식 사건 선고 공판에 출석하였다. 1980년 1월 25일 수경사 보통군법회의의 최종상고심에서 윤보선은 징역 2년, 함석헌은 징역 1년을 선고받았으나 후에 복권되었다. 1980년 신군부전두환 정권의 탄압으로 《씨알의 소리》는 강제 폐간되었다가, 1988년 12월 복간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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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두 차례 노벨 평화상 후보자로 선정되었으며, 성서뿐만 아니라 동서양의 각 고전를 섭렵하여 자신의 사상으로 소화하여, 씨알사상이라는 비폭력, 민주, 평화 이념을 제창하였다. 비폭력주의 신조로 말미암아 “한국의 간디”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기도 하다. 사회 평론뿐만 아니라 《도덕경》 등의 각종 동양 고전 주해도 행하였고, 그리고 시를 창작하기도 했다. 1989년 사망 당시 그의 나이 89세였다.

 

 

<-- 옆 사진은 잠시 있던 함석헌님의 박물관.(연두색)

 원래 댁이 뒤센관 뒷쪽 언덕 위여서 아침에 터밭을

가꾸는 모습이나.. 엄울한 시절에 출타하시는 모습을

뒤센관이 생기기 전 언덕위에서  더러 뵙곤 하였는데

 

 80년인가  하루는 청소 시간 교문앞에서 학교로 2~3발 쯤

 들어서서는  감시원을 <너희는 정부의 개>표현을 쓰시며  

 막 꾸짖는 소리를 들었다.

- 당시는 그래도 경찰이 학교안으로는 들어오자 않았다.

  아마 그때가 언론에 명동 YWCA 위장 결혼식 즈음.

 

돌아가시고.. 얼마 안되어 험석헌 박물관을 초라하지만

컨테이너 박스로 세웠다.   또  1~2년도 안되어..

그나마 있는   박물관 전체가 헐리고  빌라가..ㅠ.ㅠ

ㅠ.ㅠ

 

 

 

 

 

 

 

 

 

 

 

 

 

 

 

* 이사진은 혹 자료로 필요할 것 같아 올려둔다.. / 학교에서 본 잠시 있었던.. 함석헌 박물관 /

 

         2003년 6월3일 -  헐리는 함석헌 박물관과 옛 집터.. ..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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